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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스토리와 전략

150년을 이어온 보습제의 전설, 바세린(Vaseline)의 브랜드 스토리

by 알고 버는 남자 202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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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건조한 피부에 빠질 수 없는 필수템, 바세린(Vaseline).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이 제품이 사실은 150년 전 석유 찌꺼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번 콘텐츠에서는 피부 보습제의 상징이 된 바세린의 브랜드 역사와 개발 뒷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바세린의 시작: 석유 찌꺼기에서 탄생한 아이디어

로버트 아우구스투스 체스브로(Robert Augustus Chesebrough)는 183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후 뉴욕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그의 첫 직업은 향유고래 기름을 정제해 연료를 만드는 일이었지만,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가 발견되며 그의 일자리는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에너지 자원인 석유에 주목한 체스브로는 현장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로드 왁스'라 불리는 석유 찌꺼기가 상처나 화상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관찰은 훗날 바세린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페트롤리움 젤리의 발견과 바세린의 탄생

체스브로는 로드 왁스를 정제하는 데 5년의 시간을 투자하며 연구했고, 마침내 1870년 밝은 색의 페트롤리움 젤리를 완전히 분리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젤에 독일어의 ‘물(wasser)’과 그리스어의 ‘기름(elaion)’을 조합해 ‘Vaseline’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872년, 바세린 제조 방법으로 특허를 취득하고 뉴욕 브루클린에 공장을 세운 체스브로는 본격적으로 바세린을 상업화하게 됩니다.

바세린의 초창기 마케팅 전략

당시 약사들은 바세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체스브로는 무료 샘플 제공이라는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도입했습니다. 1873년까지 약 50만 개의 샘플을 배포했고, 심지어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낸 후 바세린을 발라 회복을 입증하는 자해 마케팅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바세린은 점차 신뢰를 얻으며 피부 보습과 감염 차단에 효과적이라는 인식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바세린

1875년에는 영국 시장에 진출하였고, 빅토리아 여왕이 바세린을 애용했다는 일화 덕분에 영국과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어 프랑스, 호주, 캐나다 등으로 시장을 확장했으며, 1905년에는 튜브형 바세린 제품도 출시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군수품으로도 사용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는 화상 치료제 및 거즈 제품으로도 공급되며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의약품에서 스킨케어로: 바세린의 진화

이후 바세린은 다양한 응용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감기·근육통에 쓰이는 캡시쿰 바세린, 두통용 멘톨 바세린, 바세린 헤어 토닉 등이 그것입니다. 점차 의료용 제품을 넘어 화장품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1955년에는 폰즈(Pond’s)와의 합병으로 체스브로-폰즈사가 출범했습니다.

현대 바세린: 유니레버의 글로벌 브랜드

1986년, 체스브로-폰즈사는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Unilever)에 인수되며 바세린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표적인 보습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텐시브 케어 로션, 립 테라피, 바디워시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했으며, 다양한 피부 타입에 맞춘 제품군으로 소비자층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마무리: 석유 찌꺼기에서 시작된 위대한 발견

바세린은 처음엔 상처 치료제로 알려졌지만, 보습 및 감염 방지에 탁월한 효과로 인해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50년 넘게 전 세계 가정에서 사용되는 스킨케어 필수품으로, 피부 건강을 위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기술, 마케팅, 글로벌 확장을 아우르는 바세린의 브랜드 스토리는 오늘날에도 혁신과 신뢰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2025년 6월 기준의 최신 정보에 기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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