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인쇄 잉크 제조 기업이자, 중국 자금성 보수에 채택된 유일한 한국 페인트 브랜드, 노루페인트. 이 브랜드의 시작은 1945년 광복 직후의 혼란기에서 비롯됩니다. 한 청년의 도전과 신념, 기술에 대한 끈질긴 열정이 결국 전 세계가 인정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잉크 회사, 대한오프셋잉크
1945년, 일본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한 청년 한정대는 광복된 조국에서 잉크 사업을 시작합니다. 인쇄업계는 기술 공백과 자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한정대는 "문화 재건은 인쇄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대한오프셋잉크를 창립했습니다.
당시 그는 욕실용 솥을 가마솥 대신 사용하고, 중고 롤링기를 고물상에서 구해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악취와 소음으로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강 뚝섬에 새로운 공장을 설치해 잉크를 자전거로 운반하며 생산을 이어갔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이어진 기술 개발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정대는 대한오프셋잉크의 설비를 부산으로 옮겨 한국은행권 인쇄용 잉크를 납품하며 전시 경제에 기여했습니다. 이후 한국조폐공사의 설립 과정에서도 기술을 지원하며 잉크 산업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잉크에서 도료로, 페인트 산업에 도전하다
1953년, 전쟁이 휴전되자 한정대는 페인트 산업 진출을 결심하고 미국, 독일 등 해외 기술을 적극 수입했습니다. 이때 독일 본에서 우연히 본 ‘노루 그림’에 매료되어 노루표(NOROO)를 브랜드로 채택하게 됩니다. 노루는 해치지 않고 사랑받는 동물로, 브랜드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1957년, 노루표 페인트는 미 8군 납품으로 도료 사업을 시작하고, 1962년에는 마포아파트 건설에 참여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주거용 페인트 납품 기업이 되었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기술력: 자금성 프로젝트
1994년, 중국 자금성 개원 70주년 보수 작업에서 세계 유수의 페인트 기업들이 실패한 도장 테스트에 유일하게 통과한 것이 바로 노루페인트였습니다. 자금성 보수를 위한 19만여 통의 페인트가 공급되었고, 이는 노루페인트가 국제적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친환경 기술 선도
2000년대 들어 노루페인트는 친환경 트렌드에 발맞춰 저냄새, 저휘발성 유기화합물(VOC) 페인트 제품을 선도적으로 출시했습니다. 어린이용 친환경 제품 ‘인포로’와 70% 냄새를 줄인 수넨수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세계 컬러 표준 기업 펜톤(PANTONE)과의 협업으로 국내 최초 ‘팬톤 페인트’도 선보였습니다.
브랜드 통합과 글로벌 도약
2010년, 지주회사 명칭을 ‘DPI 홀딩스’에서 ‘노루홀딩스’로 변경하고, 그룹 전 계열사를 노루(NOROO)로 통일하며 브랜드 파워를 강화했습니다. 현재 노루페인트는 중동, 중국, 동남아,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되며, 건축용 도료를 넘어 자동차, 가전, 모바일 등 다양한 산업용 도료로도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브랜드의 힘은 역사에서 나온다
노루페인트는 단순한 페인트 브랜드가 아닙니다. 광복 직후 국가 재건을 돕기 위해 시작된 기술적 도전이, 세계 최고 권위의 건축물 자금성을 장식할 만큼 성장한 국가 대표 도료 브랜드로 이어진 것입니다. 한정대 창업자의 신념과 도전, 그리고 기술 혁신의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브랜드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600년 역사의 자금성이 선택한 페인트, 그 뿌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잉크 기업에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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