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아픔을 내일로 가져가지 않겠다.”
이 한 마디는 단순한 문장이 아닌,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시작이자 유한양행의 정신을 대변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조국이 일제 강점기에 놓여 있던 시절, 미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1. 9살에 홀로 떠난 미국 유학
1904년,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박사는 러일전쟁의 위기 속에서 부모님의 결단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는 영어조차 하지 못했지만, 청소와 식사 준비까지 도맡으며 빠르게 적응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2. 경제의 중요성을 깨닫다
미국에서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소년병학교에 입학한 유 박사는 민족의 역사를 배우며, 조국이 왜 식민지가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경제력 부족’. 그는 상업과 경영을 통해 조국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합니다.
3. 통조림 숙주나물에서 시작된 첫 번째 성공
미시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동양인을 위한 상품을 판매하며 사업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특히, 향수병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을 위해 만든 숙주나물 통조림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며 창업가로서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4. 유한양행의 설립과 철학
1926년, 그는 미국에서 번 돈 전부로 의약품을 사들여 한국으로 귀국하고 유한양행을 설립합니다. 당시 약국마다 가짜 약이 넘쳐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절대 해가 되는 상품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고품질 의약품 보급에 힘썼습니다.
5. 안티푸라민의 탄생과 제약 공장 설립
1933년, 부인인 의사 홈일리의 제안으로 개발한 안티푸라민은 유한양행의 첫 자체 의약품입니다. 관절염, 신경통, 벌레 물림까지 다양한 효과로 국민의 필수 상비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는 이어 부천 소사에 제약공장을 세워 본격적인 국산 의약품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6. 사회적 기업의 모델을 제시하다
유 박사는 1936년, 유한양행을 법인화하며 주식을 직원에게 분배하는 국내 최초의 직원 지주제를 도입합니다. 또한 수익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 환원하며 교육사업에 힘썼고, 1963년에는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해 실업교육을 장려했습니다.
7. 진정한 기업가, 유일한 박사의 유언
1971년, 그는 평생 모은 재산과 유한양행의 지분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며 “나는 빈손으로 떠나고, 유한양행은 사회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지금까지 유한양행은 공공성과 기업가 정신을 지키며 운영되고 있습니다.
8. 유한양행이 남긴 유산
2025년 현재, 유한양행은 안티푸라민, 삐콤씨, 유한락스 등 다수의 국민 브랜드를 보유한 국내 대표 제약사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매출을 넘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익성을 기준으로 하는 경영철학은 여전히 업계에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유일한 박사는 ‘기업을 통한 사회 봉사’를 실현한 인물입니다. 유한양행의 역사는 단지 제약 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윤리적 기업문화와 지속 가능한 경영의 귀중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의 올곧은 신념이 한 나라의 산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일한 박사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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